FROM. 취향관 에디터 정현

부쩍 마음이 오락가락합니다. 한동안 내내 비가 쏟아져서 그럴까요. 의욕과 의지가 샘솟다가도 ‘근데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중얼거리며 무력해지기 일쑤입니다. 사실 저는 쉽게 동요되는 사람이에요. 조울증을 의심해볼 만큼 업다운이 심하죠. 그 낙차가 느껴질 때마다 허탈감이 찾아오곤 합니다.

물론 그만큼 쉽게 에너지를 되찾는 타입이기도 해요. 자주 열광하고, 오만 가운데서 영감을 얻고, 끊임없이 감동받습니다. 세상엔 어찌나 멋있고 재밌고 경외심을 느낄 만한 것들이 많은지 제 레이더는 종일 쉴 틈 없이 돌아가요.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 근사하고 세련된 공간과 브랜드, 영상과 문장의 형태로 쏟아지는 다채로운 문화예술 콘텐츠까지. 그렇게 좋다고 느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어이 소개하고 전달해야 직성이 풀리니, 여기까지 들어도 곁에 두면 참 피곤한 사람이겠다 싶죠?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부지런하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니고, 출근 전에는 카페에 들러 개인 작업을 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사부작사부작하다 작은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니까요. 열심히 산다고들 표현하던데, 글쎄요. 저는 여전히 잘 동의가 안 됩니다. 뭐랄까 제가 보기엔 그냥 좀 그럴듯한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좀 이상하죠. 요즘 들어 꽤 지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지치고 피곤하고 귀찮아서 도망가고 싶습니다. 이 빠르고 시끄럽고 냉정한 도시로부터 도망가고 싶고 허울 좋은 크리에이티브와 동기부여와 영감의 세계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요. 부지런하게, 치열하게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저는 무슨 자격으로 점점 지치는 걸까요? 왜 공허하고 무력하기까지 한 걸까. 그토록 사랑하던 것들이 불쑥 이런 감정들을 던져 줄 때면 저는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다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삶과 자유롭고 여유롭게 흘러가는 삶. 두 이상적인 삶의 형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계신가요? 그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끼고 있진 않고요? 때때로 찾아드는 공허함과 답답함, 그러니까
‘현타’가 찾아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과 태도로 통과해나가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다 필요 없고 세상엔 너무 재밌고 신기한 것들이 많으니까 부지런히 흡수하고 내 걸로 체화할 거야 하는 분도 있겠죠. 그런 것들이 다 견디기 힘든 자극이어서 큰맘 먹고 고개를 돌리고 템포를 늦춘 분들도 있을 거고요. 도시가 주는 많고 빠른 풍요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잘 활용하는 분도, ‘자연스러운 것’, ‘내가 제어하고 조절할 수 있는 속도’를 최우선의 가치로 둬 한 발짝 떨어져 계신 분도 있을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혼란과 즐거움과 고민이 담긴 일상을 나눠주세요.
저 역시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하고 어쩌면 전혀 공감 안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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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취향관 에디터 정현

좋아하는 걸 모으고 분류하고 그걸 어떻게든 활용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 좋음을 남들한테 기어이 전파하고 “야,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 쾌감을 느낍니다. 요즘은 그것도 자주 피곤하고 귀찮게 느껴져 고민입니다.

👀요즘 나의 화두는?

  • 대도시에서 산다는 것, 특히 '서울'에서의 삶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오래가는 것, 작은 것들로 충만한 삶은 서울에서도 가능한 걸까? 이 도시에서 나는 어떻게 '나의 속도'를 지킬 수 있을까?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주제는?

  • '나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주는 것들'에 관하여 : 사람, 장소, 도시, 문화 콘텐츠, 누군가와의 대화 내용 등 일상 속에서 당신에게 크고 작은 자극을 주는 것들에 관해 들려주세요. 그렇게 열심히 흡수하고 체화하는 과정이 늘 설레고 신나는지, 혹은 가끔은 지치거나 버겁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Alin 앨린